선덕여왕
우리 민족사 최초의 여왕이 되다
선덕여왕(善德女王)은 신라의 제27대 국왕으로 이름은 덕만(德曼, 德萬)이다.
진평왕과 마야부인의 장녀인데, 남편은 음갈문왕(飮葛文王)으로만 기록되어 있다.
그녀는 사서에 선덕왕으로 기록되어 있지만 오늘날 그녀를 선덕여왕으로 부르는 것은
제37대 국왕 선덕왕(宣德王)과 구별하기 위해서이다.
《삼국사기》에 따르면 632년 진평왕이 아들 없이 죽자
국인들이 왕녀 덕만공주를 새로운 왕으로 추대한 다음 ‘성조황고(聖祖皇姑)’라는 존호를 올렸다.
즉위시 선덕여왕의 나이는 알려져 있지 않지만
조카인 김춘추가 603년에 태어난 것으로 미루어 볼 때 40대 중후반이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신라는 본래 골품제에 따라 외부의 혈통이 전혀 섞이지 않은 성골들만이 왕위를 계승하는 것이 관례였지만
그 무렵에는 성골 출신의 남자들이 계속 줄어들어 근친혼으로 간신히 대를 이어가고 있었다.
《삼국유사》에서는 당시 김씨 성골의 남자가 남아있지 않아 여왕을 세웠다고 기록되어 있다.
그러므로 선덕여왕의 아버지 진평왕이 성골로서는 최후의 남자였음을 알 수 있다.
진평왕에게는 덕만공주·천명공주·선화공주 세 딸이 있었다.
둘째인 천명공주는 훗날 진골 최초의 국왕인 태종무열왕 김춘추의 어머니였고,
셋째인 선화공주는 백제 무왕과의 로맨스를 통해 〈서동요〉라는 노래를 빚어낸 인물이다.
선덕여왕은 후대에 지혜와 덕성을 갖춘 인물로 추앙되었지만
사료상으로만 본다면 명군 대접을 받기에는 여러 모로 부족한 듯이 보인다.
그녀의 치세에 신라는 대내외적으로 커다란 위기를 겪으면서 국세가 크게 위축되었기 때문이다.
-출처 : 다음 백과-
아래 진평 왕릉 입구
아래 선덕여왕의 아버지 진평왕릉
'경북의 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일월산 숲길 치밭목에서 윗대티마을 (0) | 2020.10.28 |
---|---|
일월산 아름다운 숲길 옛 국도를 따라 (0) | 2020.10.28 |
경주 황성공원 맥문동 (0) | 2020.08.02 |
이가리간이해수욕장과 이가리 닻 전망대 (0) | 2020.07.06 |
동해안 연안 녹색길(칠포~오도리)(경북 포항) (0) | 2020.07.05 |